한글 정복기
그림책을 펴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일곱 살 둘째의 책 읽는 소리가 제법 낭랑하다. 작년 12월이 돼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또래보다 많이 늦었다. 그래도 느긋하게 기다려준 엄마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발전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인 내가 교육에 큰 뜻이라도 있나 보다 생각했을 거고 아님 보기보다 아이를 방치한다고 했을 거다.
글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이는 세상이 더 신기하게 보이나 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잠깐씩 멈춰진 차 안에서도 아이는 창밖의 간판을 읽어 내리기에 바쁘다.
둘째는 예정일보다 조금 빠르게 2.5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누나와 비교하면 발육이 조금씩 늦었다. 그 중에서도 말은 정말 늦었다. 엄마, 물, 우유 소리는 제때 했는데 그 다음에 나와야 할 ‘아빠’ 소리부터는 전혀 하지 못하고, 세 돌이 가까워서야 조금씩 하기 시작했으니 많이도 늦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원래 말이 늦은 애가 있다 하셔서 그 당시엔 크게 걱정 안 했는데, 둘째의 늦은 말은 엄마인 내 잘못이었다.
둘째가 태어날 즈음은 조기영어교육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영어에 할애하고 영어 관련서적을 뒤지며 매달렸어도 늘 영어 때문에 주눅 들어있는 나. 아이들에겐 그런 고생을 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아이와의 대화가 들어있는 영어책을 사서 책을 통째로 외워가며 아이에게 해 주는 대부분을 영어로 하고 두 돌이 가까워질 때부터는 원어 비디오도 하루에 한 편씩 빠짐없이 보여주곤 했다. 말도 빠르고 이미 우리말의 언어 형성이 다 된 큰 아이에겐 그 학습법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둘째에겐 이중 언어가 들어가며 우리말도 영어도 자연스레 나올 거라 기대했던 나의 지나친 욕심은 아이를 네 살이 넘도록 심한 말더듬이로 만들고 말았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아이가 우리말에 대해서도 혼돈을 느낄 수 있을 거란 걸.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우리말을 잘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한 탓에 아이만 고생하게 만든 격이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언어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영어 학습을 멈췄다. 영어 그림책도 모두 싸서 높이 올려놓고 한글 그림책 읽어주기만 열심히 했다. 그때가 사십 개월 즈음이었다. 언어치료 하는 기관에 문의를 하니 시기는 적절하지만 엄마와 분리되어 치료를 받으려면 아이가 불안해 할 수 있으므로 네 돌이 지나서 오는 게 좋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림책 읽어 준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참 고맙게 더듬는 것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어줬는데 왜 글을 못 읽을까 답답해지는 것이다.
다섯 살 난 여름에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아는 동물이름을 물으며 카드를 만들어 벽에 붙였다. 문방구에서 오백원짜리 화살을 사 동물 학대를 시작했다. 사냥에 나선 것이다. 아이는 신나서 화살을 힘껏 당겨 호랑이도 맞추고 사자도 맞추고 고릴라도 맞춰 나갔다. 동물 이름을 거의 알아갈 무렵, 사냥에 시들해진 아이와 낚시를 했다. 훌라후프를 연못으로 하고 그 안에 물고기 이름을 카드로 만들어 클립을 끼워 넣고 자석이 달린 장난감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는 것이다. 새는 다시 사냥으로 과일과 야채는 시장놀이로 의료기기는 병원놀이를 하며 익혀나갔다.
틈틈이 낱자를 만들어 뒤에 찍찍이를 붙이고 융판에 붙여 누나와 떼었다 붙였다 하며 놀게도 했다. 큰아이가 공부하던 교재를 잘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게 단어장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주욱 읽게도 했다. 아이가 싫어하면 쉬고 내가 귀찮으면 큰아이에게 미뤄가며 쉬엄쉬엄 거의 일 년 반이 흘렀다.
12월도 막바지인 어느 날, 아이는 갑자기 읽기 책을 한 권 들고 오더니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모르는 글자는 내 얼굴을 쳐다보고 알려주면 다시 책을 보며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다 읽고는 대뜸 제가 읽은 책을 내 앞에 내밀며 누나처럼 꿀을 발라 달란다. 그것도 하트무늬로 발라 달란다. 뜬금없이 뭔 꿀인가 했더니 큰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유태계 그림책 작가인 ‘페트리샤 폴라코’의 책을 읽고 난 후 책 안의 이야기처럼 꿀을 발라주며 ‘지식의 힘은 꿀처럼 달콤하다’ 했던 장면을 떠올린 거였다. 그때는 누나가 주인공이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이 순간은 제가 주인공이 되어 제 자신이 읽은 책 위에 그 때처럼 꿀을 발라 달라는 거다. 그렇게 해 주었다. 듬뿍듬뿍 발라주었다.
엄마인 난 아이들의 일상에 늘 매어 있다. 그러다 잠깐씩 소파에 앉아 즐기는 사치가 바로 책읽기다. 책을 읽는 순간은 나와 책만 있어 좋다. 그리고 책읽기를 통해 우물 밖의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좋다.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책을 통해 생각이 자라고 자신이 더 소중해지고, 더 겸손해지고, 더 자랑스러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맙게도 엄마의 큰 잘못을 무마해준 작은 아이는, 이제 더 많은 글을 읽으며 더 큰 세상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 여행이 책 위에 발랐던 꿀처럼 달콤한 길이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