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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를 읽고

류도한 2023. 2. 12. 17:49

 

더불어 산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본능일 것이다. 예부터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써온 우리네 언어습관만 봐도 우리 민족은 유난히 공동체적인 삶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우리 아이, 우리 가족, 우리 학교 등, ‘우리’라는 말 속에는 혈연관계에 국한된 ‘내 것’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는 걸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더불어 산다는 진정한 의미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의문을 구석구석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은 늘 모두 다 따뜻해야 한다는 ‘공동 행복론’에 귀결된다. 우리나라 유적지를 두루 돌아보며 친구에게 편지 쓰듯 편안하게 써내려 간 기행문이지만 유적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역사적 해석이 우리의 통찰력에 경종을 울릴 만 하다.    

반구정과 압구정에 관한 이야기다. 반구정은 경기도 파주의 작은 산에 위치한 정자인데 세종조의 현상(賢相)이었던 황희 정승이 지은 것이다. 멀리 임진강이 한가로이 흐르고 고목이 비둘기를 벗해 노니는 모습이 평화로운 한 정승의 노년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찾아와 옛 주인의 청렴함을 배우고,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얻으며 고개를 숙인다.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백성들을 품에 안았던 한 고귀한 인간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일 것이다.

이에 반해 압구정은 황금의 땅,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명회의 암자이다. 세조의 책사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절대권력을 누리고 두 딸을 왕비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한명회. 칠삭동이라는 오명(汚名)이 납작 엎드려 빌고 도망가 버릴 만큼 대단한 권세였지만, 그의 권력은 백 년도 채우지 못하고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시대의 역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육신 · 생육신을 비롯한 많은 충신들을 자신의 정권탈취을 위해 사정없이 죽인 죄값을 치른 것이리라. 또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고 일신의 영화를 위해 권력을 함부로 남용한 것에 대한 역사의 단죄였을 것이다. 결국 그가 노년에 비둘기나 벗하며 살겠다고 지은 소박한 꿈인 압구정마저 오늘날 현대아파트에게 그 좋은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켠으로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작가 신영복은 이 두 재상의 정자를 두고 많은 ‘살음(生)’에의 진리를 말하고자 했다.  혼자만 잘사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결코 아니며,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것이 정치’라는 말로 이 두 재상의 삶과 올바른 정치의 정의를 내려놓았다.

그는 또 지리산에 가서도 하룻밤을 묵는다. ‘금강산은 빼어나긴 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엄하긴 하나 빼어나진 못하다’라며 지리산을 남한 최고의 산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곳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대학자 남명 조식이 재야(在野)정신의 수련장으로 거처하던 ‘산천재’가 있다. 조식은 그 곳에서 장엄한 지리산을 바라보며 큰 정치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을 얻어낸 것만 봐도 지리산이 그에게 준 뜻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 하다.

 태백산맥의 소광리 소나무숲에서는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무궁무진한 혜택을 되새기고, 남산의 소나무가 도시에 갇혀 울고 있음을 호소했다. 백담사의 만해 한용운과 일해 전두환의 극한 대비도, 가야산 해인사 입구의 제시석에 남겨진 최치원의 시를 보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잊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인물들의 삶의 행보를 되짚어 가며 사람이 가장 큰 오류를 범하는 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이므로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시대를 초월해 존경받을 수 있다고 역설(逆說)한다. 

또한 피를 팔아 어려운 생계를 꾸려가는 친구가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물을 먹고 피를 뽑는 모습을 보고는,

 “어떤 경우에도 피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떤 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경제학자인 그에게 인간에 대한 이런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건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을 걸어 봄직하지 않은가.

작가는 남다른 인생을 살았다. 그는 1968년에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20년간 감옥에 복역했다. 그 당시 가장 첨예했던 이념이 공산과 민주였던 것을 돌이켜보면, 그도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 쓰라린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년의 투옥생활은 어쩜 그에게 원망과 한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키워나가는 금쪽같은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의 책 면면에, 사는 것에 대한 겸손함이 배어 있고, 대중(大衆)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흔건히 묻어 있는 것이 그것을 잘 반증해 준다.

작가는 비단 국토를 여행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여행하며, 살음(生)이 어때야 하는지를 잔잔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해 준다. 자연속에서, 사람속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행은 휴식이자 동시에 미래를 위한 또 다른 투자이다. 좋은 곳에 가서 피곤했던 심신을 회복시키고 건강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발판이라 본 다면 이만한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에 살았던 조상들의 발걸음을 좇아 그들의 숨소리와 섞이고 그들의 잘 잘못을 마음껏 성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한 쾌감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