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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게 되면 마음도 함께 성숙되어 세상살이가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나 혼자였던 삶에서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만을 위한 생활에서 내가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 늘어가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일에 걱정되고 화나는 일이 왜 이리 많아지는지, 나는 점점 마음이 조여듦을 느낀다. 나만 잘하면 되리라던 세상살이가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녹록치 않으니 두렵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후 가장 많이 한 것이 사람을 만난 일 같다. 눈을 뜨면 아니, 꿈속에서조차 사람들을 만난다. 그럼에도 제일 어려운 일이 사람과의 만남이다. 아직도 나는 작은 일에, 사소한 것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날들이 많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모든 일이 엉망이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나도 모르게 책장 앞에 서게 된다. 그럴 때 뽑아드는 책이 ‘장 지오노’의『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가 젊은 시절 여행길에서 체험한 이야기다. 그는 헐벗고 황폐하기 그지없어 여행자의 발길이 닿지 않는 단조로운 황무지로 긴 여행길에 오른다. 세상의 무게가 힘겹고, 삶에 대해 묻고 싶어 떠났던 길이었겠지만,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그의 용기와 여유가 부럽기만 하다.
그는 사람의 자취가 사라져버린 황무지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부인과 자식을 잃고 혼자 사는 양치기였는데, 그는 노인을 조용했으며 살갑게 굴지는 않아도 정겨워 보이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난 이 장면에서 한참을 멈추어 몇 번이고 되뇌어 읽곤 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더불어, 내가 있는 곳이 그 노인 앞이기도 한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노인은 그 곳에서 달리 할일이 없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 나무 심는 일이라고 했다. 3년 전부터 질 좋은 도토리를 꼼꼼하고 정성스레 가려내, 그것을 척박한 땅에 10만개를 심었고 2만개가 싹텄다. 그 중 절반은 들쥐나 다람쥐의 먹이가 되었겠지만, 나머지 만 그루의 참나무는 살아 자라게 된 것이다. 나무 심는 일에 생명의 힘을 느끼고 너도밤나무 재배법도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노인의 정신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휴전 시엔 그곳을 찾아보던 장 지오노는 땅이,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말라있던 마을 도랑엔 끝없이 펼쳐진 참나무와 너도밤나무 숲으로 인해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돌아오면서 기름진 땅, 버드나무, 고리버들, 풀밭, 꽃,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이 함께 돌아왔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황폐한 땅엔, 아니 이젠 자연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땅엔 행복을 찾아 터전을 잡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다음날을 맞이해야 하듯, 인생도 연결지어 살아가는 듯하다. ‘메마른 땅’에서는 누구나 생활의 피폐함에 지쳐 불만에 쌓인 삶이 계속된다. 그러나 기름진 땅에서는 ‘희망’ 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수없이 떠오르니 말이다.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가난하여 학교를 마치지 못했던 장 지오노. 말벗도 없이 그 곳을 반복해 찾았던 이유는, 황무지가 자신의 삶과 닮았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나무로 인해 변해가는 땅을 보며 장지오노도 그렇게 서서히 작가로서 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두레 아이들에서 출판된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그림을 보는 책이라고 했는데, 정말 글만큼 그림이 주는 감동도 크다. 그림을 보며 느리게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색연필이 주는 연한 빛이 내 마음을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그림을 그린 바크는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두 번이나 받은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큰 별이다. 그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5년 동안 약 2만 장의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캐나다 국민들이 나무 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 2억 5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급변하는 세대에 인쇄매체가 빛을 발하며 내게 빠르게 쫒아오길 손짓할 때, 난 어릴 적에도 그랬듯 빠르지 못함에도 주눅이 들고 뒤쳐짐에도 불안하다. 그럴 때 이 책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내겐 향기가 나는 묵상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