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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는 잠시라도 집밖으로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태양이 뜨겁고, 그 열기에 맞서서 내가 더 뜨겁노라 자랑하는 듯 지열도 화끈화끈 달아올라 숨쉬기조차 힘든 요즈음에 선생님, 무고하신가요? 서울은 이런 시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욱 뜨거울 텐데, 몸도 약한 선생님께서 이 더위를 어떻게 이기고 계신지 걱정이네요.
저는 얼마 전에 이 더위를 피해서 강원도 인제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가족 외에도 세 가족이 더 모였지요. 해마다 광복절 즈음에 모여 함께 휴가를 가는데, 이번 모임이 벌써 햇수로 6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젠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워낙 익숙해져서, 너무 편안하고 그래서 더욱 고대하게 되는 그런 모임입니다. 강원도 쪽으로는 그 전에 벌써 몇 차례 다녀왔었는데, 인제는 처음이었답니다.
아! 그런데 너무나 멀더군요. 남편 군대갈 적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러나 양구보다는 낫다고 했다더니, 에구구 진짜로 멀었어요. 서산에서 여섯 시간이나 걸렸답니다. 하지만 그 여섯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내내 즐겁기만 했답니다. 가는 내내 구불탕 구불탕 펼쳐지는 산길과 깊은 산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산골 마을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어요.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경치들이었답니다. 가면서 내내 남편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애들과는 끝말잇기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요. 그러다 문득 선생님과 함께 설악산에 가던 일이 생각났어요.
토요일 근무 마치고 늦은 버스를 타고 설악산으로 가는데,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거의 한밤중에 도착했었지요.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얘기들을 했던지요. 보통 많은 말을 하고 나면 좀 허무한 생각이 드는데 그 땐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날 그 순간에 선생님이 제게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서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여행을 함께 한 이후로 선생님은 제게 너무나 소중한 분이 되었지요.
여섯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민박집을 보고, 우리는 또 한번 행복했습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그 집 곁에는 고추와 깻잎, 옥수수가 심어진 작은 텃밭과 옹기종기 항아리들이 놓여진 볕 좋은 장독대, 그리고 텃밭 앞에, 너무나 투명해서 그 몸속까지 온전히 드러낸 넓은 개울뿐이었답니다. 햇빛 부서지는 그 너른 마당에서,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개울에서 피라미와 함께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렸고, 우리 어른들은 원두막에 둘러앉아 한 잔 술을 마시며 사는 얘기들을 했지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행복한 그런 하루였답니다.
둘째 날은 내린천 상류로 래프팅을 하러 갔습니다. 래프팅하는 모습을 TV에서 보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단 생각을 참 많이 했었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져 조금 추웠지만 그래도 그토록 고대하던 레프팅을 포기할 순 없었지요. 구명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가이드의 구령에 맞추어 준비운동, 노젓기 연습을 하고 난 후에, 두 가족 7명에 가이드까지 8명이 한 보트에 탔습니다. 최근 한 달간 비가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천의 수위가 낮아져서 급류에 휩쓸리는 일은 없었는데, 대신에 드러난 수많은 바위들을 피해서 가느라고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보트를 타려고 할 때부터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던 비가, 보트를 타고 10여분이 지나자 마구 퍼붓더군요. 빗줄기가 얼마나 거세던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드러난 팔뚝이며 허벅지로 빗방울이 내리 꽂히는 느낌이더군요. 비를 맞는다는 것이 이리도 아픈 것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강 양옆으로 초록이 무성한 산봉우리들, 그 봉우리를 희롱하는 구름, 저기 머얼리서 우리를 감싸오던 안개, 넓은 수면 위로 쏟아져 내리던 빗방울들, 빗방울들이 그려내던 동그라미들, 수면에서 다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에는 온통 내게로 쏟아지던 빗줄기만이 가득했었답니다. 비가 너무나 많이 와서 더욱 잊지 못할 래프팅이었습니다. 맑은 날은 맛 볼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정취…….
두 시간 가까이 보트를 타고 오는데, 거의 하류로 다다랐을 즈음에는 비도 그만 그치고 말더군요. 그런데 이젠 거의 다 왔구나싶은 그 때에 마침 배가 바위 사이에 걸려서 옴쭉달싹을 안 하는 겁니다. 가이드가 밀고 당기고 자리를 옮기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트가 꼼짝을 안 해서, 결국은 모두 보트에서 내려 구명조끼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물살에 휩쓸려 물 속에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바위에 부딪쳐 가며 겨우 떠내려 왔답니다. 비가 와서 많이 추웠지만, 참가했던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 더 하고 싶다고 조를 정도로,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래프팅을 한 이후에 점심을 먹고 나서 번지점프를 하러 갔습니다. 그 전부터 꼬옥, 정말로 꼬옥 한 번은 해 보고 싶었던 일이라, 무슨 여자가 그리 겁이 없냐는 일행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들뜬 마음으로 번지점프장으로 갔습니다.
너무나 고대하고 고대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63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뛰더군요. 쪼끔 두려운 생각도 들구요. 한 번에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너댓 번을 망설이다 저 사람은 못 뛰어내리겠다, 생각할 즈음에 겨우겨우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막상 뛰어내려놓고서도 두려움에, 줄이 멈출 때까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번지점프는 발목에다 끈으로 묶는 방법과 허리에다 끈을 묶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어요. 어떤 방법으로 할까 고민하는데, 남편이 나이 사십 줄에 혹여 아내가 어떻게 될까 두려웠는지, 번지점프하다 죽은 사람 한 명도 없다는데도 그냥 안전하게 허리에다 묶고 하라는 겁니다. 옆에서 큰딸도 그래 엄마, 허리에다 묶고 하는 게 훨씬 낫겠다하며 계속 걱정을 하구요. 그래서 결국은 끈을 허리에다 묶는 걸로 결정. 사람이 많아서 삼십 분 이상을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내내 비상을 생각했습니다. 번지점프는 추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상하는 것을 꿈꾼 제가 너무 어리석은가요? 무욕의 마음으로 새들처럼 훨훨 날고 싶다는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죠. 점프대 위로 올라갈 때는 막상 아무 생각도 안 들더군요.
드디어 점프대. 저 아래 강이 흐르고, 저 건너에 산이 있고, 그리고 보이는 것은 허공뿐……. 함께 올라간 조교가 카운트를 해 주더군요.
“쓰리, 투, 원, 점프!”
아! 그런데 못 뛰겠더군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내 몸을 던진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어요. 한 번을 망설이고, 다시
“쓰리, 투, 원, 점프!”
어느 사이 내 몸이 허공을 날고 있었어요.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날았어요.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고 가라앉고, 다시 날아올랐어요. 내린천의 녹조가 다 보일만큼 수면 가까이로 추락했다가, 하늘높이 튀어오르고 다시 아래로……. 허공에 매달린 채 남편과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사랑해~”
“사랑해~”
노래하며 날기를 좋아하는 할미새처럼 저도 그렇게 계속 소리치고 싶었어요. 새들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공중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렇게 가슴 벅찬 일이었지요.
에구 근데요, 사실은 좀 시시했어요. 즐겁고 신나기는 했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라서요. 두려운 것은 단 한 순간! 허공을 향해 뛰어내리는 그 순간뿐이더군요. 그냥 멀리서 보기에 워낙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 무섭게 보이는 것일 뿐 88열차나 바이킹보다도 덜 무섭던 걸요 뭘. 실제로 전 88열차나 바이킹은 타지도 못한답니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타 봤었는데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었거든요.
어찌됐든 그렇게 저는 번지점프를 했습니다. 소원 풀었죠 뭐. 참 행복한 휴가였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선생님께서도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많은 얘깃거리들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너무 궁금합니다. 어찌 지내시는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일간 서울에 들르게 되면 연락 드릴께요.